본문 바로가기
역사

공민왕 - 고려의 회광반조 같은 군주

by 시뮬라크 2024. 4. 2.

목차

    고려의 실질적 마지막 군주

    고려의 공민왕(공민왕, 1330년 ~ 1374년)은 고려의 31대 왕으로 무신 정권 혁파, 친원 세력 축출 등 고려의 개혁 군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사위 나라)으로 공민왕은 원나라의 '노국대장공주'와 결혼하였다. 고려의 왕위 경쟁에서 두 번이나 조카들에게 밀렸지만, 노국대장공주와 기황후의 도움으로 1351년에 결국 왕위를 차지하게 된다. 

    기황후는 고려 여인 최초로 원나라의 황후가 되었으며, 그녀의 도움으로 공민왕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공민왕과 기황후의 관계는 항상 평온하지는 않았다. 기황후는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군사 1만으로 고려를 침공하려 했으나, 이 계획은 최영 장군에  의해 패배로 끝났다.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대원리(현 황해북도 개성시 용흥동) 소재 화장사(華藏寺)에 봉안되어 있던 공민왕(恭愍王) 어진의 유리건판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북방영토 수복과 반원 정책

    당시는 '홍건적의 난' 등 원 말기로, 어지러운 틈을 타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관할 지역을 수복(1356년)하여 한반도 철령 이북의 땅을 되찾았고[각주:1], 정동행성(征東行省)을 폐지하였다. 또한 원나라의 연호 대신 독자적인 연호를 쓰고, 관직 명칭도 원래대로 되돌려놓았다.

    공민왕의 영토수복 ⓒ doopedia

    노국대장공주는 공민왕이 반원 정책을 실시할 때, 자신이 태어난 고국을 배척하고, 남편을 도왔으며공민왕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1365년 난산으로 아들을 유산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죽자 공민왕은 매우 슬퍼하였고, 정치에 흥미를 잃은 공민왕은 전권을 신돈(辛旽)에게 위임했다. 공민왕은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 벽에 걸고 밤낮으로 바라보면서 그리워했다고 한다.[각주:2] [각주:3]

    이성계가 종묘에 모신 공민왕의 신당에 있던 영정.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함께 그려져 있다.

    신돈의 정치개혁

    신돈은 노비를 풀어주고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토지 제도를 개혁하는 등 신속하고 공정한 정치를 펼쳤고, 권문세족과 부원세력(附元勢力, 친원 세력)들을 포함한 조정 내의 부패한 세력들도 몰아냈다. 또한, 고려의 관학인 성균관도 부활시켜 신진사대부의 세력 강화에도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신돈은 왕의 신임을 믿고 부정부패와 축재를 하며, 신진사대부의 핵심 인사들을 숙청하며 정도전등 신진 사대부와 대립하다가 1371년 공민왕에게 숙청당해 처형당한다.[각주:4]

    공민왕의 죽음

    공민왕은 1372년에 자제위(子弟衛)[각주:5]를 설치하였다. 홍륜, 최만생 등 젊고 잘생긴 청년들을 뽑아 이 곳에 두고, 좌우에서 시중을 들게 한 기관이었다. 홍륜은 공민왕의 후궁이었던 익비(益妃)와 간통하여 임신시켰는데 이를 최만생이 은밀히 공민왕에게 보고하였다. 공민왕은 "이 사실을 아는 자를 모두 죽여야겠다"고 말했다. 최만생은 자신까지 죽게 될까 두려워 홍륜에게 사실을 고해바쳤고 며칠 후 그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신하들과 궁녀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방화를 일삼았다.

    천산대렵도 - 자제위의 사냥을 묘사

    결국 공민왕은 도망가려다가 홍륜, 권진, 홍관, 한안, 최선, 최만생에 의해 붙잡혀 1374년(공민왕 23년) 9월 21일에 암살되었고, 그해 새로 정권을 잡은 이인임 세력이 최만생 들을 처형하고 자제위를 폐지한다.[각주:6]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묻힌 현정릉. 서쪽에는 공민왕의 현릉이고, 동쪽에는 노국공주(왕비)의 정릉. 개성시 개풍구역 해선리 위치>

    공민왕 이후 왕들은 실질적인 권력이 없이 이어지다가 조선이 건국된다. 여러 평가들이 있지만 고려의 마지막을 찬란하게 불태운 고려의 회광반조와도 같은 군주였다.


    1. 이때 이성계가 등장하여 그의 아버지 이자춘과 활약하여 중앙정계로 진출한다.  [본문으로]
    2. 145회 ‘뒷담화’ -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 ㅣ KBS방송 [본문으로]
    3. KBS 한국사전 – 신화가 된 사랑, 공민왕과 노국공주 [본문으로]
    4. KBS 역사스페셜 – 미천하니 거리낄 것이 없다, 개혁가 신돈 / KBS 2003.3.8 방송 [본문으로]
    5. 이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가 쌍화점이다. [본문으로]
    6. 이성계는 종묘에 공민왕 신당을 모셨다. (표지 그림은 종묘 신당 영정의 공민왕과 노국공주이다.)
      사당도 전국에 세워졌는데 서울 창전동에 위치한 사당이 대표적이다. (공민왕 사당제가 열린다) [본문으로]